대표가 되고 보니 #4년 지난 버전
대표가 되고 보니... 4년 지난 버전
창업을 꿈꾸던 시절에는
세상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기획이나 디자인을 못해
시작도 못하는 나를 보고
한참 헤매이던 시절이 있었지.
사실 아무것도 못하는 거였음.
신입 시절에는
시니어들은 왜 저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나.
현실만 보내고 있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나이 들고 나서 보니 사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라고.
회사는 혼자 돌아갈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
안하는게 아니고 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됐던거지
생각을 해봐.
하루 일정이 회의로 가득 차 있는데
누군들 개발을 하고 싶겠어?
그리고 만약 한다고 해도 권한보다 책임이 앞서 있는데
누군들 개발을 하고 싶겠어?
주니어 시절에는
지금 놀아도 시간이 많은 줄 알았어..
그래서 나중에 할 수 있는게 많이 생기면 그 때 하려고 했지.
그런데 지나고 나서 보니 내가 의도적으로 하지 못했던 것들은 머리 속에 안 남더라고.
제일 큰 문제는 이걸 나중에 깨달을 때는 이미 늦었단거야.
누가 그랬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거라고.
맞는 것 같음.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음.
대표가 되고 나서 보니
사실 나는 아직 ##이 더 좋고
이제서야 많은 걸 할 수 있게 됐는데
## 말고 다른 일이 계속 주어지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사실 ##을 잘 못하게 되어 가고 있어.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고 싶지만
이미 가족과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러기도 쉽지 않아.
대표가 되고 나서 보니
알고 있는게 많은게 가끔 허들이 될 수 있어.
알고 있다는건 지금 바로 시작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사실 안되는 것만 알고 있고 된다는 걸 잘 인지를 못해.
대표가 되고 나서 보니
할 수 있는게 많아 졌단 사실이 가끔 부담이 돼.
모른 다고 하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잘 한다고 하기에도 그렇고.
상당히 모순적인 존재가 되어 가지.
그 사실 자체를 인정하면 좀 나은데
그게 참 어렵더라고.
내가 못 한다고 이야기 해야하잖아.
사실 개발자 중에 나는 이런거 못합니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꺼야.
회사를 나갈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은...
대표가 되고 나서 보니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23년 정도 됐는데
사실 아직 그냥 막 코딩하는게 좋고
법칙이나 디자인 패턴 같은건 잘 눈에 안 들어와.
보통은 그 흐름에 맞게 뭔가를 익히지만
난 예전부터 관심있는 것만 파다보니 항상 흐름이랑 반대로 갔어.
혼자서 열심히 오픈소스 해보는 것도
나만의 방식을 찾아보고 싶어서 인 것도 있고.
과연 답이 하나일까에 대한 궁금증도 있고.
저 사람이 만든 것과 내가 만든 것을 비교 하면서 코딩 하는 재미도 있고.
그냥 재밌는게 많아.
대표가 되고 나서 보니
아직까지는 그냥 기획+개발자가 맞는 것 같아.
나도 언젠가는 언어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OS 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고민도 해보고
나만의 방식을 강요하는게 아니라 전 세계 인구만큼 방식이 많아 졌으면 하기도 하고
세상은 하나의 알고리즘만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니깐
서로 각자가 원하는 형태로 막 코딩 했으면 하기도 하고
생각하다보니 개발은 각자의 방식을 서로에게 알려주면서 하는 것 같아.
대표가 되고 나서 보니
가끔 기획+개발자라는 직업을 창의적인 직업이라고 하지만
사업을 처음부터 설계하고 만들지 않은 이상은 그런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
그 저 주어진 환경에 주어진 목표를 잘 수행하면 되는거지.
그게 나쁜게 아니란 것도 알았어.
그런 사람들도 두근거리는 목표를 받으면 충분히 잘 할 수 있거든.
그래서 내가 잘난 사람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대표가 되고 나서 보니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중에 하나가 기획+개발은 항상 완성을 향해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거지.
완료를 목표로 가면 안된다는 것도 알았어.
그래서 가끔은 목표를 바꾸고 포기할때도 많으니 당연하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지기도 해.
시작한지 3개월된 사업을 접을 수도 있고,
2개월만에 오픈하기로 한 사이트가 알수 없는 이슈로 일년뒤에 오픈할 수도 있고
무수히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 사실에 개발자가 개입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단 것도 알았어.
왜나하면 개발자는 사업의 주체가 아니니깐.
그 어디도 개발 잘 해서 사업이 잘 됐어요 라고는 못 들어 봤어.
대표가 되고 나서 보니
개발 잘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어도 안되는 곳도 많아서.
개발조직 장이 엄청 잘 해도 사업이 잘 안되면 말짱 꽝이니깐.
그래서 이제는 시니어도 아니고 주니어도 아닌 사람이 되기로 했어.
할 수 있는 만큼 코딩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재밌게 살아야지.
디자인 패턴 하나에 너무 몰두 하지 않고
테스트 코드 하나에 벌벌 떨지 않고
내가 틀려도 너무 기죽지 말고
또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어.
아쉬운건 손이 조금 아프단 것과
점점 나이가 들어감에 체력이 떨어지는건데
이건 그 동안 익혀온 것들을 잘 쌓아두면 좀 낫지 않을까 해.
20년만 더 쌓아봐야지.
그 때는 그 때의 일들이 있을테니.
ps.
2년전에 나에게 한 마디 하자면
세상 모든 것을 해보기도 하고 하나를 죽 파기도 해보고
그렇게 하다 보면 너만의 길이 보일테니 즐겁게 해.
다만 말로 남겨두는 것보다 코드로 뭔가를 남겨줬으면 좋겠어.
말은 사라지지만 코드는 디지털 세상에서 말 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때 언어를 하나 만들었으면 지금쯤 제대로 된걸 하나 만들었을지도 모르니.
(그리고 국,영,수 는 필수로 해야한다고 꼭 꼭 이야기 하고 싶다)
15년 후에 나에게 한 마디 하자면
지금처럼 맘 껏 코딩 할 수 있게 체력도 좀 길러놓고 손도 안 아팠으면 좋겠어.
그러니 자기 관리를 좀 열심히 해봐.
너무 책상 앞에만 앉아있지 말고.
세상을 좀 더 즐겨.
(그리고 너의 꿈을 버리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