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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데이터를 입력으로 받고 정보를 만들어 지식으로 쌓이게 된다. 이 과정을 되풀이 하며 경험과 연결 되는데 지식과 경험이 삶과 연결 될때 비로서 우리는 지혜로 발전 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살다 보니 어린 것들이 잘난척 하며 자신의 지식을 뽐내게 되는데 가끔 or 어쩌다 데이터의 입력이 얼마 없고 되풀이 하지 않아도 지식으로 발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우리는 그들을 재능이 있는 사람 or 천재 등으로 이야기 한다.

하지만,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극명하다. 경험이 지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Factor가 존재 하는데  그것은 시간과 인간간의 관계에서 나오는 무언가 이다.

논리적으로 이해는 가지만 감정적으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감정적 경험은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것을 뜻하며 절대 논리적으로 획득 되는 대상이 아니다.

여러가지 요소에 의해서 계속 발전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천재적인 삶을 살아 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 안에서 발견 하는 것은 천재들의 삶은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좋아 보일수 있으나  그들에게는 좋지 않아 보일수도 있다. 

왜냐 하면 그들은 노력이라는 것이 많이 필요없이 많은 것을 획득 하기 때문에 결과의 소중함을 느끼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고 간절히 원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것들을 쉽게 얻을수 있기 때문에 때론 천재들이 단명하는 경우가 존재하기도 한다. 물론 외부적인 다른 요인이 발생 할 수도 있다.

어떤 천재는 단명하고 어떤 천재는 장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우리 행복의 필수 요소 중 하나는 기쁨이 아니라 기쁨과 절망이다.

그 둘이 어울어져 삶이 있고 선과 악이 공존해야 하며 누군가는 선하게 살고 누군가는 악하게 산다. 하지만, 모두가 선하게 산다면 그 사회는 이미 죽은 사회다. 선과 악이 공존해야 한다는 논리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종교는 근본이 선을 택하는 것이고 악을 배척하는 것인데 절대선을 주장하는 사람이 간혹 있고 우리는 그를 종교적 교주 or 신이라 한다.

인간에게 절대선 or 절대악 이란 존재 할 수 없다. 만약 그가 절대선이라 주장하고 그러하다면 그는 예언자라 불려야만 한다. 우리는 그런 인간을 신의 대리인으로 모시고 산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그러하다. 그리고 신의 대리인 혹은 예언자라 불리는 인간신이 있는데 예수가 그러 하다. 

이슬람교의 신은 알라이다. 마찬 가지로 신의 대리인은 무함마드이다.

예수와 무함마드는 종교를 만든 창시자가 아니라 당시 인간들의 삶을 안타까워 했거나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한 사람이다. 나는 둘을 대중의 희생양이라 부른다. 또는 

지금 보고 있는 이 글은 지금으로 부터 20년전의 나의 고찰 결과 이다. 다만, 언어적 살만 붙어 있을뿐.  

http://ko.wikipedia.org/wiki/%EA%B5%BF_%EC%9C%8C_%ED%97%8C%ED%8C%85